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고들 합니다. 속이는 자와 속는 자. 하지만 영화 ‘꾼’은 이 단순한 이분법을 비웃기라도 하듯, ‘속이는 자를 다시 속이는 자’라는 매혹적인 제3의 인물을 전면에 내세웁니다. 우리가 흔히 정의라고 믿었던 공권력의 이면에 숨겨진 추악한 탐욕, 그리고 범죄자라고 낙인찍힌 이들이 보여주는 기묘한 의리가 충돌할 때 발생하는 에너지는 관객들을 단숨에 스크린 속으로 몰아넣습니다. 이 영화는 단순히 범죄를 모의하고 실행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의 끝없는 욕망이 어떻게 스스로를 파멸의 구덩이로 몰고 가는지에 대해 날카로운 통찰을 제시합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기억할 법한 희대의 다단계 사기 사건인 ‘조희팔 사건’을 모티브로 삼았다는 점부터 이 영화는 이미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합니다. 법의 테두리망을 비웃으며 해외로 도주한 범죄자, 그리고 그와 결탁해 부를 축적한 권력층. 누구나 한 번쯤은 “그들이 정말 죗값을 치렀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해보았을 것입니다. ‘꾼’은 바로 그 대중적 열망을 영화적 상상력으로 치환하여, 현실에서는 보기 힘든 통쾌한 ‘참교육’의 장을 마련해 줍니다. 극장 문을 나설 때 느껴지는 묘한 카타르시스는 바로 이러한 대리만족에서 기인합니다.
단순한 오락 영화를 넘어, 이 작품이 가진 서사적 힘은 ‘반전’의 정교함에 있습니다. 관객이 영화가 설계한 첫 번째 판에 익숙해질 무렵, 영화는 보란 듯이 그 판을 뒤집어 버립니다. 그리고 그 뒤집힌 판 아래 숨겨진 진짜 목적이 드러날 때, 우리는 비로소 주인공 황지성이 왜 그토록 치밀하게 움직였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이번 리뷰에서는 단순히 줄거리를 나열하는 것을 넘어, 영화 속에 심겨진 복선들과 배우들의 연기 앙상블, 그리고 이 영화가 한국 범죄 스릴러 장르에서 차지하는 독특한 위치를 심도 있게 파헤쳐 보겠습니다.

기본 정보
- 제목: ‘꾼’ (The Swindlers)
- 감독: 장창원
- 주연: 현빈, 유지태, 배성우, 박성웅, 나나, 안세하
- 장르: 범죄, 액션, 드라마
- 개봉일: 2017년 11월 22일
- 러닝타임: 117분
- 상영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 스트리밍: 넷플릭스, 티빙, 쿠팡플레이
주요 등장인물
황지성 (현빈): 사기꾼들만 골라 속이고 다니는 일명 ‘사기꾼 잡는 사기꾼’입니다. 비상한 두뇌와 뛰어난 변장술,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는 대담함을 가졌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희대의 사기꾼 장두칠의 밀항을 돕다가 의문의 죽음을 맞이했으며, 지성은 아버지의 억울함을 풀고 장두칠을 직접 잡기 위해 거대한 판을 설계합니다. 겉으로는 가벼워 보이지만 속에는 깊은 복수심을 감춘 입체적인 캐릭터입니다.
박희수 (유지태): 서울중앙지검의 수석 검사로, 표면적으로는 정의를 구현하는 엘리트 검사처럼 보이지만 내면은 권력욕과 탐욕으로 가득 찬 인물입니다. 과거 장두칠과 결탁하여 뇌물을 받았으며, 자신의 비리가 드러나는 것을 막기 위해 장두칠을 공식적인 수사가 아닌 ‘제거’의 대상으로 삼습니다. 황지성을 이용해 장두칠을 낚으려 하지만, 결국 본인의 오만함 때문에 스스로 파놓은 함정에 빠지게 됩니다.
고석동 (배성우): 황지성에게 사기를 당해 박 검사에게 붙잡힌 뒤, 형량을 줄여준다는 조건으로 수사에 협조하는 사기꾼입니다. 현장에서 바람을 잡거나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극의 분위기를 유머러스하게 환기시키는 역할을 하지만, 후반부 반전의 중요한 키를 쥔 인물이기도 합니다.
곽승건 (박성웅): 장두칠의 비자금을 관리하는 오른팔로 알려진 인물입니다. 의심이 많고 철두철미하여 황지성 팀이 접근하는 데 가장 애를 먹는 타겟입니다. 하지만 황지성이 설계한 완벽한 가짜 사업 계획에 조금씩 흔들리며, 영화의 긴장감을 극도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춘자 (나나): 뛰어난 외모와 능수능란한 연기력을 겸비한 사기꾼으로, 팀 내에서 미인계를 담당합니다. 타겟의 시선을 분산시키고 도청 장치를 설치하는 등 현장 업무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합니다. 거침없는 말투와 당당한 태도가 매력적인 인물입니다.
김 과장 (안세하): 각종 해킹과 위치 추적, 디지털 정보 조작에 능한 기술 담당 사기꾼입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팀의 눈과 귀가 되어주며 작전의 성공률을 높입니다.
예고편
줄거리 (스포일러 주의)
영화의 서막은 대한민국을 뒤흔든 4조 원대 사기 사건의 주범 장두칠이 해외로 도주했다는 소식과 함께 열립니다. 얼마 후 그가 중국에서 사망했다는 공식 발표가 나지만, 세간에는 그가 살아있다는 소문이 무성합니다. 장두칠의 죽음으로 사건이 종결되길 바랐던 권력층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지만, 아버지를 잃은 황지성은 그가 살아있음을 확신하고 복수를 위해 귀국합니다.
지성은 장두칠의 소재를 파악하기 위해 그와 연결된 사기꾼들을 하나둘씩 처리해 나갑니다. 이 과정에서 박희수 검사의 레이더에 포착되는데, 박 검사는 장두칠이 살아있을 경우 자신의 정치적 생명이 끝날 것을 두려워하여 지성에게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합니다. “장두칠을 잡아오면 너의 전과를 말소해주겠다”는 것이었죠. 그렇게 해서 지성과 박 검사, 그리고 박 검사가 부리던 사기꾼들(고석동, 춘자, 김 과장)이 한 팀이 되어 비공식 수사팀이 결성됩니다.
이들의 첫 타겟은 장두칠의 자금줄인 곽승건이었습니다. 지성은 태국에서 온 거물 투자자로 변장하여 곽승건에게 접근합니다. 춘자는 곽승건의 시선을 빼앗고, 고석동은 가짜 사무실을 차려 그를 안심시킵니다. 치밀한 연극 끝에 곽승건은 지성의 미끼를 물게 되고, 드디어 장두칠과의 연락책 역할을 수행하게 됩니다.
하지만 작전이 막바지에 다다를수록 박 검사의 본색이 드러납니다. 그는 장두칠을 잡은 뒤 황지성까지 한꺼번에 제거하여 모든 증거를 인멸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지성 역시 이를 간파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고석동과 춘자, 김 과장은 박 검사의 부하가 아니라 처음부터 황지성과 한패였던 친구들이었습니다. 곽승건 또한 사실은 지성을 돕기 위해 장두칠의 수하인 척 연기했던 배우였습니다.
진짜 반전은 마지막에 터져 나옵니다. 박 검사가 장두칠을 만나기로 한 장소에 들이닥쳤을 때, 그곳에는 진짜 장두칠 대신 황지성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지성은 박 검사가 과거 자신의 아버지를 죽였다는 자백을 유도하고, 이 모든 과정을 실시간으로 인터넷에 생중계합니다. 법의 보호 아래 악행을 저지르던 박 검사는 전 국민 앞에서 파멸을 맞이하고, 황지성은 아버지의 복수를 완수하며 진짜 장두칠을 향한 새로운 여정을 시작합니다.
감상 포인트
설계의 미학: 관객마저 속이는 다층 구조
‘꾼’의 가장 큰 즐거움은 ‘누가 누구를 속이는가’를 추리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대부분의 범죄 영화가 주인공과 악당의 대결 구도를 선명하게 가져가는 것과 달리, 이 영화는 아군 내에서도 서로를 의심하고 감시하는 첩보전의 성격을 띱니다. 박 검사가 황지성을 도청할 때 관객은 박 검사가 우위에 있다고 믿게 되지만, 나중에 그 도청 장치마저 황지성이 의도적으로 노출한 것임이 밝혀질 때의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이는 감독이 관객의 시선을 정교하게 유도하고 배신하는 ‘미스디렉션(Misdirection)’ 기법을 아주 훌륭하게 사용했음을 보여줍니다.

배우들의 시너지: 부드러움과 서늘함의 조화
현빈은 기존의 정의로운 이미지를 탈피하여 능글맞으면서도 날카로운 사기꾼의 모습을 완벽하게 소화했습니다. 특히 변장할 때마다 달라지는 눈빛과 말투는 그가 왜 ‘꾼’인지를 증명합니다. 반대로 유지태는 감정을 절제한 연기로 소름 끼치는 악인을 완성했습니다. 젠틀한 외모 뒤에 숨겨진 잔인함과 탐욕은 극의 긴장감을 지탱하는 중심축입니다. 두 주연 배우의 팽팽한 대립과 함께 배성우, 나나, 박성웅 등 조연진의 탄탄한 연기가 어우러져 극의 밀도를 높였습니다.




사회적 메시지: 사기보다 더 사기 같은 현실
이 영화는 단순히 오락성을 추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 사회의 권력 구조를 꼬집습니다.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지성의 대사는 사기꾼의 기술이기도 하지만, 언론과 권력이 대중을 호도하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장두칠이라는 괴물을 만든 것이 결국은 권력자들의 욕망이었다는 점, 그리고 그 괴물을 잡기 위해 법이 아닌 사기꾼의 방식이 필요했다는 설정은 현대 사회의 모순을 날카롭게 풍자합니다.

비교 및 맥락
‘꾼’은 조의석 감독의 ‘마스터'(2016)와 자주 비교됩니다. 두 영화 모두 대규모 금융 사기 사건을 다루고 있으며, 악역의 모티브가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마스터’가 거대 권력과 정의의 정면 승부를 다루는 블록버스터의 문법을 따른다면, ‘꾼’은 좀 더 개인적인 복수와 심리전, 그리고 반전에 집중한 케이퍼 무비(Caper Movie)의 특성을 보입니다. 또한 최동훈 감독의 ‘범죄의 재구성’이나 ‘도둑들‘이 가진 경쾌한 리듬감을 계승하면서도, 좀 더 서늘하고 어두운 톤의 복수극을 결합했다는 점에서 차별화됩니다. 장창원 감독은 이 데뷔작을 통해 복잡한 플롯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뛰어난 연출력을 인정받았습니다.
총평
‘꾼’은 영리한 영화입니다. 관객이 무엇을 기대하는지 정확히 알고, 그 기대를 살짝 비틀어 더 큰 재미를 선사합니다. 범죄 오락 영화의 공식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반전의 강도를 높여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일부 개연성에서 아쉬운 부분이 있을 수 있으나, 배우들의 열연과 속도감 있는 전개가 이를 충분히 덮고도 남습니다. 특히 마지막 통쾌한 복수 장면은 답답한 현실을 잊게 할 만큼 강력한 한 방을 선사합니다.
별점: ⭐⭐⭐⭐ (5점 만점 중 4점)
추천 관객
- 마지막 순간 소름 돋는 반전을 즐기는 스릴러 마니아
- 현빈과 유지태의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 대결을 보고 싶은 분
- 현실의 답답함을 날려버릴 시원한 권선징악 스토리를 선호하는 분
- ‘도둑들’, ‘마스터’ 같은 팀플레이 범죄 영화를 좋아하는 분
마무리
영화 ‘꾼’을 보고 나면 문득 내 주변을 돌아보게 됩니다. 내가 믿고 있는 사실이 혹시 누군가에 의해 정교하게 설계된 판은 아닐까 하는 유쾌하지 않은 상상 때문이죠. 하지만 영화는 동시에 말해줍니다. 아무리 완벽하게 설계된 거짓일지라도 진실을 쫓는 자의 의지 앞에서는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요.
이 작품은 단순히 시간을 때우기 위한 영상물이 아니라, 신뢰가 무너진 사회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집니다. 현란한 속임수와 화려한 액션 이면에 흐르는 슬픈 복수의 서사는 이 영화를 오랫동안 기억하게 만드는 힘이 됩니다. 주말 저녁, 가족이나 연인과 함께 누가 진짜 ‘꾼’인지 내기하며 시청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선택은 없을 것입니다.
영화 속 지성이 던진 마지막 승부수는 아마도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용기일지도 모릅니다. 판을 짜는 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그 판 위에서 놀아나는 말이 될 것인가. 선택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여러분은 이 영화를 보셨나요? 감상이 어떠셨는지 댓글로 남겨주세요! 특히 여러분이 생각하는 최고의 반전 장면은 어디였나요?
※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영화 제작사에 있으며, 출처는 네이버 영화 입니다.
Q1: 영화 ‘꾼’의 장두칠은 실존 인물인가요?
A1: 장두칠은 실존 인물 조희팔을 모티브로 창작된 캐릭터입니다. 조희팔은 실제로 조 단위의 사기를 치고 중국으로 달아난 뒤 사망 발표가 났으나, 여전히 생존 설이 돌고 있는 인물입니다.
Q2: 나나의 연기력에 대한 평가는 어땠나요?
A2: 이 영화로 스크린에 데뷔한 나나는 아이돌 이미지를 완전히 벗고 연기자로서 합격점을 받았습니다. 능청스러운 사기꾼 연기와 화려한 외모가 캐릭터와 완벽하게 부합했다는 평이 지배적입니다.
Q3: 영화의 결말이 이해가 안 가요. 지성은 처음부터 박 검사를 노린 건가요?
A3: 네, 맞습니다. 지성의 아버지를 죽인 진범이 박 검사라는 사실을 지성은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장두칠을 잡겠다는 제안은 박 검사를 안심시켜 스스로의 죄를 고백하게 만들기 위한 거대한 미끼였습니다.
Q4: 쿠키 영상이나 후속작 소식이 있나요?
A4: 별도의 쿠키 영상은 없지만, 엔딩 장면 자체가 “진짜 장두칠을 잡으러 가자”는 대사로 마무리되어 후속작을 강력하게 암시합니다. 하지만 아직 공식적인 2편 제작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습니다.
Q5: 촬영지 중 태국 장면은 실제로 현지 촬영인가요?
A5: 네, 영화 초반 분위기를 압도하는 이국적인 배경은 실제 태국 방콕 등지에서 로케이션 촬영을 진행하여 영상미를 높였습니다.